이 글은 2018년 5월 31일 한겨레 ‘ESC’에 실린 글입니다
‘스타워즈’의 주요 배우 중 캐릭터 이름보다 배우 이름이 더 잘 알려진 배우는 해리슨 포드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처음부터 거물이었던 알렉 기네스(오비완 카노비 역)를 제외하면 말이다. 하긴 그렇다. 일면식도 없는 공주를 구하겠다며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냉소만 하고 공주는 돈이 많아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라는 권유에 “야, 난 상상력이 풍부해.”라는 응수를 날려주는 한 솔로를,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 >
또는 탄소 냉동되기 직전에 ‘사랑합니다’라는 공주에게 ‘알고 있습니다.(I know.)라는 결정적인 대사를 날리는 한솔로를 해리슨 포드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고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유명한 ‘알고 있습니다’는 해리슨 포드 본인이 만들어낸 대사가 아니었을까.
<스타워즈> 에피소드 6: 제국의 역습>
디즈니의 ‘자회사’가 된 루카스필름이 만든 <스타워즈> 스핀오프 <한솔로>가 팬이라면 안을 수밖에 없는 기대와 동시에 일말의 우려를 불러온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해리슨 포드가 없는 한 솔로가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또는 실현될 수 있을까.
이러한 우려에 대해 주최 측이 내놓은 첫 번째 조치는 ①시나리오 작가다. 로렌스 캐스던은 무엇보다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이 스타워즈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국의 역습의 각본가다. 이것만으로도 <한솔로>는 확실한 법통을 세우고 들어간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제국의 역습의 작자인 것으로.또 하나는 ②번.감독이다 근작 ‘인페르노’의 참담함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다름 아닌 론 하워드가 연출한 스타워즈에 대한 호기심 자성은 충분히 강하다.
론 하워드 감독과 탠디 뉴턴
<한솔로>의 세 번째 카드는 ③’시리즈 사상 최초’다. 사소하게도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카체이스 액션이 등장하고(물론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의 숲 속 스피더 바이크 체이스 장면을 제외하면), 열차 강도 액션도 시리즈 최초로 등장한다. 또한 크게는 ‘스페이스 오페라’ 대신 ‘스페이스 웨스턴’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한솔로>는 서부극, 그 중에서도 특히 마카로니 웨스턴의 정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한솔로>의 네 번째 카드는 그와 정반대인 ④그것들의 기원이다. 무슨 말인지. <한솔로>에서는 ‘솔로’라는 한솔로의 성(성)에서 시작해 그의 권총에 찬 조준경, 츄바카가 늘 어깨에 두르고 있는 탄띠, 뿔 두 개가 솟은 듯한 밀레니엄 팔콘 특유의 정면, 그 우주선 바닥에 있는 ‘밀수 전용’ 비밀 공간 등 오리지널하게 등장한 각종 디테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이는 단연 스타워즈 팬들, 그 중에서도 특히 오비완 카노비를 이반 맥그리거가 아니라 알렉 기네스로 기억하는 세대의 팬들을 위한 보너스인데, 확실히 이 영화는 <제국의 역습>의 짧은 대사(예를 들어, 옛 친구 랜드 컬리지온의 <내 우주선에 무슨 짓을 했어?>에 <네> 우주선이라고? 내가 정당한 내기에서 우주선이라는 걸 잊었어?라는 솔로의 응수 등)를 배양해 만든 영화인 만큼 한솔로와 츄바카, 랜드 칼리지온, 밀레니엄 팰컨과의 첫 만남 등의 기원을 밝히는 팬서비스는 당연한 귀결이다.
또 영화는 <제국의 역습>의 얼음 행성 ‘호츠’에 숨은 반군을 찾아낸 정찰 드로이드라든가, 밀레니엄 팔콘의 그 유명한 홀로그램 체스판, 한솔로의 전용 결정타 ‘때리고 밟아라!(Punchit!)’ 등의 세세한 ⑤추억 아이템도 곳곳에 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가 팬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크고 작은 기념품들을 영화 곳곳에서 수집하는 것은 충분히 즐겁다.
또 <한솔로>가 채택한 ‘시리즈 최초’도 나쁘지 않다. <한솔로>의 주조색은 스타워즈 은하계 중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톤인 모래색(세피아)이다. 특히 영화의 최종 목적지인 해변 장면은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외딴 비주얼로 마카로니 웨스턴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당연히랄까, ‘허리에 권총을 풀어헤친 총잡이의 뒷모습, 그리고 그와 마주한 적’ 장면 또한 어김없이 등장한다(로렌스 캐스던이 각본을 쓴 ‘레이더스’에서도 이 장면은 예외 없이 등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장면이 ‘결정타 한방 만기 시점이 도래했습니다’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제국의 역습>인 솔로와 랜드 캘리지안의 오랜만의 재회(갑자기 나타난 솔로에게 랜드는 정색하며 “그런 걸 해놓고 감히 여기 나타나?”라며 화를 내다가 절친 모드로 돌아가는 그 장면)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셀프 패러디’ 장면 또한 장면을 위한 장면의 향기를 강하게 풍긴다.
뭐, 그렇지.이런 부분은 아주 사소한 결함이다. 한솔로의 등골격인 솔로와 랜도의 도박 장면 느슨함에 비하면 말이다.밀레니엄 팰컨을 두고 펼쳐지는 솔로와 랜드 카드 게임의 한 판은 단순한 우주선 획득 게임이 아니라 두 캐릭터의 카리스마, 그리고 인연의 시작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부분일 것이다.하지만 영화는 “대본은 정말 대충 쓰네”라는 데드풀 내레이션의 환청이 들릴 정도로 밋밋한 대사와 긴박감 없는 지루한 연출로 일관한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적어도 솔로랜드 사이에서는 그보다는 더 흥미롭고 날카로운 언쟁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런 평범함은 도박 장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큰 틀에서 보면”한·솔로”은 ①생 게으름이 붙은 솔로의 기구하고 화려한 인생 역정과 ② 제국이 벌이는 전쟁, 그를 둘러싼 다양한 세력의 작용, 그리고 ③ 솔로의 옛 사랑이라는 3가지 큰 요소를 “우주 인디애나·존스”바람 모험담에서 솜씨 좋게 결합시키고 있다.그러나 언제나처럼 디테일은 프라다를 입는다.특히 대사에서 그렇다.결정적인 상황 때마다, 캐릭터들은 기대에 부응하는 날카로움과 바삭 바삭 감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고 진부한 대사를 천천히 부르다.한·솔로의 핵심 가운데 핵심인 “인생 쓴맛의 단맛을 다 본 “고 하듯이 유연한 농담은 하이퍼 공간 너머로 멀리 날아 버리고 그 자리를 한·솔로 역의 엘든·이렝릿치의 특별한 이유 없는 상설 전시 미소가 대신해서 있다.엘든 이렌리치의 캐스팅을 제외하고 말하자면 ‘한 솔로’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베켓 캐릭터의 매력 및 카리스마다. 루크와 오비완 카노비처럼 솔로의 스승격인 이 캐릭터는 쌍권총을 다름 아닌 전장 한가운데서 능수능란하게 돌려 등장해 남다른 카리스마와 매력을 기대케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카리스마나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없어 랜드와 키라 등 주요 캐릭터에 밀려 영화 밖에서 출연 대기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뭐 그럼 어때. 그러나 영화 종반부에 등장하는 정서적 클라이맥스의 폭발력은 전적으로 솔로와 베켓 사이의 감정의 깊이나 강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이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의 폭발력은 결국 연막탄 수준에 머문다.다만 한·솔로 치명적인 여성인 키라 역의 에밀리아, 클라크만은 “한·솔로”이 거둔 몇 안 되는 수확의 하나이다.그동안 영화 쪽에서는 별로 타율이 좋지 않았던 그는 “한·솔로”에서는 원래의 위치를 되찾은 나사처럼 자연스럽게 위치하고 있다.결말을 보면 아마 계속 다음 편에서는(다음 편이 있으면이지만)”키라”캐릭터가 더 중심적 역할을 할 것 같지만 제발 다음 편에서는 솔로와 랜드를 비롯한 핵심 캐릭터의 본래의 매력이 좀 더 선명하게 증폭될 일을 한 솔로 캐릭터의 팬으로서 진심으로 기대한다.비록 해리슨·포드의 솔로는 2번 죽어도(『 눈을 뜬 포스 』에서 1번, 엘 동·이렝릿치의 캐스팅에서 다시 1도).엘 동·이렝릿치 있는 솔로는 “밀수꾼에 도박사가 우주 비행사(scoundrel, 레아 공주가 준 솔로의 정식 학명)”보다는 디즈니 제국의 충실하고 모범적인 신민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데.한 솔로가 쉽게 하지 않은 것으로 치는 소모품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